쉽다.
재수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차혁의 솔직한 감상은 그랬다. 세상 일이 참으로 쉬웠다.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가족관계 또한 원만했다. 원하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머리도 좋았다! 조금만 설명해줘도 쉽게 이해했고 그것을 응용하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했다. 주변의 주목을 받는 것 또한 그에겐 당연했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좋은 방향으로 유지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솔직한 감상은 목 안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뱉으며 겸손한 척. 적당히 미소를 짓는다. 아, 이정도 행동은 노력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웠다. 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해줬을 뿐인데. 성과와 평판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재수없는 새끼. 이는 자신을 부르는 여러 멸칭 중 하나였지만 차혁의 마음에 가장 드는 별명이었다.
그런 차혁이 예술에, 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조각은 그가 지금까지 해온 여러 활동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조각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 지나갔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과정이 좋았다. 그 결과물이 제 눈에 차지 않으면, 그 이유는 오롯이 자신에게 있었다. 잘난 자신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었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 때의 환희와 기쁨이란! 그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어 지금껏 여러가지 도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차혁 스스로의 노력 끝에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진짜 천재들이란!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닿을 수 없는 존재들, 흔히들 말하는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었다. 차혁은 그곳에 닿고 싶었다. 오만이었고, 질투였다. 나는 내가 하늘이라 생각했는데 땅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차이에서 느껴지는 그 열등감 마저 차혁은 자신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소원을 이뤘다. 그가 원하는 방향이기도 했고,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이기도 했다.
당시 차혁은 며칠 내내 학교 동아리실에서 잠을 자며 야작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붕 뜬 느낌, 빙글빙글 도는 머리와 생각들. 다가오는 마감 시간. 자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술 대신 마신 커피캔과 각성 음료들이 이미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캔 더 마시고 싶었지만 이 이상 마셨다간 쓰러질 것 같아 세면대에서 대충 머리라도 감으며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흐르는 물에 정신없이 얼굴을 씻어낸 뒤 본 자신의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려온 다크서클, 떡져버린 머리카락과 그 사이에 섞인 톱밥들, 거뭇하게 올라온 수염, 피곤에 찌든 표정. 아, 잘생긴 나의 모습은 이제 다 사라졌구나. 하고 한숨을 쉬며 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야, 너는 어째 야작을 해도 얼굴이 멀쩡하냐? 부럽다 부러워."
제 등을 찰지게 때리며 지나간 동기이자 차혁이 가장 부러워 하는 한 천재가 한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이상하다, 지금 내 상태는 최악인데 멀쩡하다니. 잠이 덜 깼나 싶어 찬 물로 한 번 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에 비친 상 너머, 자신의 얼굴 위로 희미하게 일렁이는 환영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제 남들과 완전히 다른 이가 되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