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211015, 20211017 벨베르디아 단문 리퀘
2021-10-17 23:51

 

 

 벨베르디아가 생각하는 선이란?

 특정 직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으나 눈 앞에 앉아있는 상대를 보고 벨베르디아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간신히 한숨을 집어넣었다. 이것은 의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연구하는 족속들의 문제인가. 이상하다. 동기들은 이렇지 않던데.

 테이블 위에 놓여진 음료에 손이 가지 않았다. 처음 받은 질문들은 흔히들 있는 신상조사에 가까운, 가벼운 부류의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어느정도 진행된 뒤 그들이 물어보는 것의 목적이 보였다. 이 사람들, 지난번에 결국 발표된 그 논문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온 것이 분명했다. 말해줄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응해주려 왔으나 더이상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저 눈이 불쾌했다. 나는 너희들의 실험체가 아닌데.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으로 슬쩍 정리했다. 

"제가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무엇이든 여쪄봐주세요."

 자동응답기마냥 주어진 질문에 대답만 하던 벨베르디아가 먼저 질문을 하자 눈 앞의 상대는 자세를 바르게 했다. 내게 궁금한게 있다니!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당신, 지난번에 발표된 그 논문을 보고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맞습니까?"

"오, 벨베르디아님도 읽어보셨습니까?!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었죠!"

"같잖아서, 정말."

 빌어먹을 새끼. 군의관을 갈아치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묻어버릴걸 그랬나. 반응해주고 싶지 않아 내버려둔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작은 후회가 들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무릎 위에 올려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졌다. 

 사람을 몇 마디 줄글로써 정의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살 필요도 없을텐데. 논문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알게 된 것이란 그 오만함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하관계조차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문득 이런 것들을 처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제가 처리하는 입장이었지, 남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줄은 몰랐다. 차후의 일정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눈 앞에 있는 상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뒷정리는 나중에 하고, 우선은 닥친 일부터 하는게 순서에 맞겠지.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5초 내로 당신의 심장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손을 뻗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또한, 당신이란 사람의 흔적을 모두 없애고자 한다면 빠르면 반나절, 길면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무, 무엇인가요?"

"첫번째. 제 친구들이 싫어하니까요. 내 직접적인 목줄은 그들의 가치관이고 그녀석들의 성향이니까. 물론. 제가 정말로 바란다면 말리지 않고 도와줄 사람들도 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 자세를 편하게 했다. 굳이 이런 자들에게까지 바른 자세를 유지해가며, 그리고 말을 골라서 할 필요는 없다. 갑작스레 바뀐 말투와 분위기 탓에 상대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 정말 같잖다. 이런 것들을 위해 내가 한 몸 던져가며 크리처와 싸웠단 말이지. 두번째도 있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상대가 작게만 보였다.

"사자가 개미새끼 하나 깝죽거린다고 신경을 썼던가요?"

 

 

- 벨베르디아의 사랑고백 ~ 30대 중후반


 변치 않는 감정이란 없다. 한 때 뜨겁게 타오르던 무언가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하듯, 사랑 또한 그렇다. 적어도 내가 봐온 사랑은 그랬다. 진득하게 흘러나오던 처음의 그것은 이름만 남기고 스러지곤 했다.

 맞지 않는 부품을 힘으로 끼워 맞춰본 적 있는가. 운 좋게 맞아 떨어지기도 하나 대다수는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가 결국 망가지고 만다. 이것이 내가 겪은 사랑이다. 하여 나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얼룩이 점점 커져 나를 집어삼키는 일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저 침묵했고, 감정에 녹아내리는 것을 택했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막고 또 그 위에 금속으로 한 번 더 뒤덮는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나의 사랑은 칼날 같아서. 또, 내가 보고 자란 사랑은 이것 뿐이라. 내 애정이, 내가 네게 전하는 사랑이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행위와는 또 다름을 나는 안다. 그러니 나는 마지막 이기심을 부릴 것이다. 침묵만이 온전한 답이 아님을 이제는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리라. 내 개인의 만족보다 네 행복을 더 바라는 사람이라. 네게 짐을 지우기 싫어 나는 침묵을 선택한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더 무뎌지리라. 가슴에 얹힌 이 무게가 조금 더 가벼워져서,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어낼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지나가듯 던지는 농담처럼 너를 꽤 좋아했다고. 우정처럼 그럴싸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진심을 털어 낼테니.

"나는 너를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간신히 내뱉은 나의 고백은 일종의 고해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소망이기도 하다. 또한 네게 닿지 않는, 의미 없는 말이다. 결국 흘러갈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부질없는 희망을 가질 시간에 네가 좀 더 행복하기를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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