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4년 5월 말
“대형 크리처 토벌 참여 2회, 중형 4회, 소형은 7회… 부상이 없으면 토벌 종료 후 바로 다음 토벌지로 이동했답니까? 와, 거기다 지난주에 C구역 민가에 발생한 대형 화재 현장에서 구조작업도 하셨네요. 뭐랬더라, 휴일에 산책삼아 그 근처를 지나갔을 뿐인데 사고 현장이 보여서 도왔을 뿐이다? 이런건 아카데미 시절에나 읽었던 소설에서 봤지, 실제로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내 말이. 물론 이번 5월은 크리처가 유난히 많이 출몰해서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말이 안된단 말이지. 신기한 건 참가한 토벌은 많은데 정작 제출된 보고서나 공적 분배에서는 후순위로 빠지는 경우가 꽤 있단 말이야. 소령님의 전투 성향을 보면 최상단에 들어가야 정상 아닌가?”
사무실에서 토벌 보고서와 월말 보고서를 동시에 작성하던 중위와 대위는 조금 전에 제출하고 간 빽빽한 양의 보고서를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보고서의 정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서류를 보며 감탄하던 두 사람의 농땡이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똑똑. 평범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으나 타인의 보고서를 몰래 보고 있던 두 사람에겐 등 뒤에서 ‘웰컴 투 헬’이란 플랜카드와 함께 지옥문에 어서 뛰어오라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삐걱이며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눈에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빙긋 웃고 있는 그들의 상관이 보였다.
…잠깐의 소란이 지나고, 제자리에 앉은 그들의 상관은 두 사람이 봤던 보고서를 다른 월말 보고서 사이에 정리하며 말을 꺼냈다.
“너희 몰랐냐. 벨베르디아 소령 유명한 호구 중 하나인데. 너희도 실적 급하게 땡겨야 한다 싶으면 같이 임무 나가서 살아남기만 해. 그리고 귀환길이나 뒷정리 할 때 나눠달라고 하면 다 나눠줄껄. 그렇게 승진한 사람들 꽤 있어.”
상관의 폭탄 발언에 매번 고생을 했던 두 사람은 이번에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 속으로 끙끙 거리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짬이 더 많은 대위가 조심스럽게 그의 상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희가 어떻게 감히 벨베르디아 소령님께 그런 발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걘 그런거 1도 신경 쓰지 않으니 그냥 말해. 달라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 나눠줄껄. 윗분들도 꽤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고.”
“그건 보고서 허위 기재 아닙니까?”
방금 저희가 한 것보다 더 큰 중죄 아닌가요? 슬쩍 눈치를 보던 중위가 반응하자 소령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기 손해 보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는데 누가 말려. 실적 좀 잘못 쓴다고 해서 죽었던 크리처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손해 보는 건 걔 하나고. 그러니 윗분들께서도 내버려두는거지. 그래, 호기심은 다 해결했니? 이제 보고서나 쓰자.”
소령님만 해결하신 것 같은데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입 안에 삼킨 중위와 대위는 반만 채워진 자신들의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서를 술술 써내려가는 대위와 다르게 중위의 손은 멈춰져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걸까? 따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닌 듯 한데.’
“중위, 여유가 많은가봐. 오랜만에 한번 굴러볼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
A구역의 간판집이 되겠다는, 아주 야심찬 목표를 내걸고 차린 수제 샌드위치 가게 메인웨이의 매니저는 조금 전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사간 단골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한 생각이었다. 분위기나 행동, 말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봐도 군인인데, 정작 제복을 입고 가게에 온 적은 없어 추측만 할 뿐이었다. 주문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말이 없는 없는 과묵한 단골 손님. 이왕 이렇게 된 것 다음 번에 오면 말을 붙여볼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가게 매니저는 쌓인 재료 손질을 이어갔다.
한편 가게 매니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당사자, 벨베르디아는 무표정으로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고 한 입 물었다. 입 안 가득 음식물들이 섞이고 움직이며 여러 맛을 선보였지만 정작 먹는 당사자에겐 닿지 않았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내용물들을 씹고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별다른 목적지 없이 걸음을 옮기던 그녀에게 작은 분수와 그 근처에서 물장난을 치며 노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정도 먹었으면 충분하겠지. 벌써부터 얹히는 기분이 들었다. 벨베르디아의 손 안에 메인웨이의 매니저가 정성스레 만든 샌드위치가 반 이상 남았지만 그녀는 남은 것을 포장지로 대강 감싼 뒤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트렌타 사이즈(30oz)의 물통 안에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셨다.
입 안 가득히 느껴지는 커피의 탄 맛과 그 안에 있는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자 멍하던 정신이 좀 드는 듯 했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더 마시며 옷에 떨어진 자잘한 가루들을 털어냈다. 참 평안하고 안온한 일상이었다. 연한 바람을 타고 들리는 물장구 소리,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렸지만 그녀에겐 멀게만 느껴졌다.
벨베르디아는 휴일이 싫었다. 몸의 회복과 전투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 적당량의 휴식이 필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호불호는 별개의 문제였다. 남들에게 너무 짧다고 말하는 휴일은 잠들지 못하는 그녀에게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극한까지 몸을 피곤하게 해 기절하듯 잠을 자는 것이 편했다.
하늘 위 구름이 작은 바람과 함께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 보던 벨베르디아는 어느새 얼음만 남은 물통을 가만히 봤다. 자고싶다. 는 생각과 함께 카페인이 간절해졌다. 어디서 긴급 소집령이나 사고가 생기지 않으려나… 같은 생각을 했지만 아쉽게도 벨베르디아의 휴일은 대부분이 그랬듯, 아주 느리고도 천천히 지나갔다.
성장 후 러닝 타임(2565년)으로부터 1년 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