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
BGM : [ Library Of Ruina ] Gone Angels
그날의 기억은 드문드문 끊겨있다. 그 뒤에 이어진 추모식에도. 검은색 상복을 입고 갔다는 것만은 기억난다. 어떻게 했었더라. 남들이 하는대로 잘 따라 했었던 것 같았다. 영혼이 나간 상태로 간신히 집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집 안.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입고 있던 예복조차 벗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장 난 기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지키기만 한다. 매번 자신 스스로 기계니, 도구 따위로 부르더니, 꼴 좋네.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창밖에 걸린 풍경이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것을 몇 번을 반복했더라. 자신만이 그 날의 기억과 감정에 묶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은 일기를 쓰고 있었다. 다시는 꺼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기장을 스스로 꺼내 게워내고 있었다. 봐왔던 것들. 느꼈던 감정들을.
끊겨있는 문장, 뭉쳐있는 잉크 자국, 쓰면서 저도 모르게 쥐어 구겨진 종이들.
기억은 미화되고 왜곡된다. 그렇게 둘 수 없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잊어선 안 된다. 기록되어야 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다 토해내자 몸에 힘이 빠졌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다 태우고 꺼져버린 촛불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뱉어낸 생각과 감정들이 무분별하게 범람했다.
벨베르디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누군가 그래야만 한다고 귓가에서 명령하는 듯했다. 일어나야 해. 그러나 마음처럼 몇 날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몸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격통이 일었다. 힘을 주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손가락 한 마디 끝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이러한 고통에 익숙했으며 지독하게 끈질겼다. 하나씩, 하나씩. 어린아이가 천천히 걸음마를 걷는 것처럼. 오랜 시간 끝에 일어나는 행위를 다시 배웠다.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난 창밖의 풍경은 한밤중이었다. 그야말로 어둠이었다.
한 평생 피해오기만 했던 사람이 선택한 것은 또 다시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 어느정도 몸을 가눌 수 있게 되고, 겉으로 보기에도 별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군으로 복귀했다. 일을 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해야 할 일은 차고도 넘쳤다. 너무나도 넘쳤기 때문에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커피와 담배가 늘었다. 그녀가 깨어있는 시간만큼 커피머신이 작동했고 입가에 문 담배불은 꺼질 일이 없었다. 원래도 낮았던 목소리는 더더욱 탁해졌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더더욱 진해졌다. 벨베르디아도 알고 있었다. 이런 행동을 해봤자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으므로, 다른 방법을 잘 몰라서. 그녀에겐 처음 겪는 이별이었기에.
26기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만났던 것은 버틀리였다.
벨베르디아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곧 있을 정기검진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녀와 함께 야근을 하던 사람들은 그녀를 잡아다 기어이 병원에 집어넣었다. 본인들의 퇴근을 위해 한 행동 있었겠지만, 그녀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것도 한 몫 했었다. 강제로 진료실에 잡혀온 채 벨베르디아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예의상의 인사를 한 버틀리는 그녀의 진료기록을 찾아왔다.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벨베르디아의 진료기록을 본 두 사람은 의무적인 대화를 제외하곤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군의관과 군인 사이의 의무적인 상담과 치료가 끝나고, 진료기록 최 하단 담당자 란에 버틀리의 서명이 새롭게 쓰였다. 벨베르디아는 그것을 애써 못 본 척 했다.
배웅을 하겠다며 따라나왔던 버틀리는 그 날 벨베르디아에게 담배를 배워갔다.
그 뒤로 벨베르디아는 여러 이유로 26기 동기들을 만났다. 일 등의 문제로도 만나긴 했지만 사적인 이유, 특히 자신을 테라피 하겠다거나 케어해주겠다는 등의 이유로 찾아오던 사람들은 유난히 힘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테오와 아이나크였다. 억지로 자신을 끌고가 쉬게 하거나, 행복해져야 한다는 등의 말을 내세워 여러 괴상한 행위들을 하는 것을 차마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냥 받기만 했다. 하지만 좋게 반응해주기도 어려웠다. 때로는 모질게 굴기도 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었다. 화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로썬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벨베르디아는 일을 핑계로, 다른 쓸데없는 이유 등으로 약속을 피했다.
어느 순간부터 단 것이 싫어졌다. 그 중에서도 별사탕이 제일 싫었다. 한 때 자신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던 자가 자주 먹었던 것이었다. 오색의 별사탕 만큼이나 찬란했던 사람이었다. 벨베르디아는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하늘에 걸린 구름을 보면 분홍색 단향이 제 주변에서 맴도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빛을 볼 수 없었다. 투박하지만 그만큼 솔직했던, 자신과 신나게 주먹을 맞대며 싸우던 사람이 떠올랐다. 지나가다 술을 마시며 유쾌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시가를 볼 때면 다급하게 제 입에 물려주던 것이 떠올라 더는 피울 수 없었다.
커피와 담배를 입에 달고 살 때면 누군가의 잔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간호인을 걱정시킬거냐며, 네가 원한다면 더는 신경쓰지 않겠다고 하던 사람이 있었다. 지겹게만 느껴졌던 잔소리가 그리워질 줄은 몰랐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자신처럼 함께 밤을 지새우던 이가 떠올랐다. 같은 위치에서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었다. 피하기 위해 일을 하다가도 그와 나눴던 말들이 떠오르면 일을 할 수 없었다. 괴로웠다. 아니, 괴로움이란 단어 따위로 감히 정의내릴 수 없었다.
떠난 이들이었지만 제 삶에 너무 깊게 남아있었다. 벨베르디아는 그들의 잔형에 잠겨가고 있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헤어나오고 싶지 않은 깊은 늪이었다.
시간은 약이라고 했던가. 벨베르디아는 그 말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을 찾아내 죽이고 싶었다. 분명 시간은 그 때의 기억과 감정들을 무디게 했다. 하지만 그것을 원치 않았다. 집에 들어갈 때면 일기장을 꺼내 그 날의 기억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했다. 자학이었고 자해였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가끔씩 집에 남아있는, 옌이 머물다 간 흔적들을 애써 모르는 척 하며 시간을 계속 흘려보냈다.
늦은 오후,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시간대에 엘리시온이 찾아왔다. 늦었지. 라는 말과 함께 내민 서류의 제목이 뭔가 이상했다. ‘엘리시온은 26기 졸업생들에게 의미가 있는가?’ 이게 뭐지. 싶어 고개를 들자 그가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이걸 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이어 함선에서 자신이 그에게 내줬던 숙제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언제든지 희생할 기회가 있다면 조금의 망설임 없이 뛰어들 것처럼 보였던 그를 보자니 화가 나 저도 모르게 했던 말이었다. 우스웠다. 지금의 내가 그 때의 엘리시온과 큰 차이가 없잖아.
벨베르디아는 그가 가져온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중간에 비어있는 칸이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말을 했을지 또한 쉽게 짐작이 갔다. 활자들을 읽었다. 그 안의 감정과 생각들을 천천히 읽어갔다. 고마워. 엘리시온의 감사 인사가 입 안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에제키엘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상관의 시체를 하나 치우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해야겠다. 시기 상으로는 벨베르디아가 과로로 인해 고장난 커피머신을 다섯번쯤 고쳤을 때였다. 왜?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에 해결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결심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럴 수 있어. 벨베르디아는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너, 자리 여기로 옮겨.”
“...예?”
무스펠이 군으로 복귀했다. 업무 관련으로 물어볼 것이 있다길래 하던 것을 멈추고 설명하는 와중에 들었던 말이 뭔가 이상했다. 잘못 들었겠지, 싶어 설명을 멈추고 되물었다.
“죄송하지만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내 부관 하라고.”
상명하복에 익숙해진 탓이었던 걸까. 아니면 곧은 시선으로 자신을 똑바로 보며 말하는 무스펠의 시선과 툭, 툭. 책상을 두드리며 지금, 당장. 이란 무언의 제스처 때문이었을까. 벨베르디아는 저도 모르게 무스펠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지만 정신을 차렸을 쯤엔 자신의 짐은 그녀의 사무실에 다 옮긴 뒤였다.
고정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탕비실이나 창고에 있는 물건들처럼,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불려나가 움직여야 했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기묘하다면 기묘한 상관이었다. 때로는 친구로 있는가 하면, 필요할 때는 상관으로. 두 사람은 올곧은 직선이 아닌 사선의 관계였다. 전에도 그녀의 밑에서 일했었고, 둘 다 사서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불편함은 커녕 편했다. 자학적으로 일에 매진하려 들면 제지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아, 이건 문제가 있던 거구나. 하고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벨베르디아는 일기장이 아닌, 과거를 복기해갔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후회되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지금의 그녀가 서있을 수 있게 도와준 말 또한 많았다.
이제부터 끊임없이 듣고, 직시해야 할거다. 그래, 시작은 이 말이었다. 평생동안 문제를 피하려 한 자신을 꿰뚫었던 말이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스스로 군인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그만두지 마라, 군인. 라는 명령이자 말은 제게 군인으로의 정체성을 다시 잡을 수 있게 했었다.
네 안에도 있지 않을까? 용기 말이야. 죽기 전까진 늦은게 아니야. 같이 찾아줄께. 할 수 있어. 과거의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향이 제게 말하는 말은 절망이기도 했지만 희망이기도 했다. 나도 가능할까? 라는 작디 작은 희망.
...내 가족이니까. 오래오래 살아. 가족이란 말을 항상 피해왔지만 그 말은 안심이 되었다. 내게도 돌아갈 곳이 있구나. 그런 안도감.
어른스럽고, 듬직하고, 상냥한건 변하지 않았는걸. 앞으로도 늘 그랬으면 좋겠어. 자신이 선망하고 존경하던 사람의 신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지지대가 되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말들. 다정한 말들. 잊을 수 없는 말들. 평범했으나 평범하지 않았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의 나열들.
그제서야 벨베르디아는 알았다. 나는 이렇게나 상냥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있었구나. 지금까지의 삶은 나 혼자 버텨온 것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상냥함에 기대 안전하게 자라왔던 것이구나.
통곡했다. 목이 잠겨 어떤 목소리도 나오지 못할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터져나온 감정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다음날 아침 출근을 했지만 무스펠은 못볼 꼴 하고 내 앞에서 일하지 말라며 집으로 쫓아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벨베르디아는 울었다. 몇 십 년간 쌓여온 감정들을 모두 소리내 토해내듯이, 아프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사람은 한참동안 곡을 했다.
일을 빨리 끝낸다고 했지만 인생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결국 벨베르디아는 늦게 도착했다. 이미 은퇴식은 끝나있었다. 남은 사람들을 간단히 배웅하고 입에 담배를 물고있던 버틀리에게 다가갔다. 가벼운 인사를 하며 휴대용 재떨이를 그에게 가까이 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를 털었다. 벨베르디아 또한 입에 담배를 물었다. 두 사람이 만날 때면 이제는 습관처럼 잠시간의 침묵과 함께 으례 한번씩 담배를 태우곤 했었다.
다 피운 담배와 함께 휴대용 재떨이가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고, 벨베르디아는 버틀리를 안았다. 사람의 체온과 나무 특유의 단단함이 함께 느껴졌다. 그녀는 더이상 자신의 의료기록에 적힌 담당자 이름을 피하지 않았다. 리오 유르칼. 버틀리. 앞으로 그 뒤에 새롭게 쓰여질 이름을 똑바로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품 안의 온기를 기억하기 위에 꽉 껴안고는 떨어졌다. 또다른 작별의 시간이었다. 벨베르디아는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경례했다.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뒤에서 단단히 지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저 혼자서도 잘 해내보겠습니다. 우리의 군의관에게 경의를.”
“저도 지금까지 함께 싸울 수있어서 기뻤어요, 디아. 언제나 우리가 당신들을 지지했다 말하지만 아니에요. 앞에서 당신들이 서 있었기에 우리는 버텼던 거겠죠. 혼자 싸우지 말아요, 손 잡지 못하더라도 당신들을 위해 나 언제나 기도할거야. 나의 군인들에게 경의를.”
자신의 군의관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벨베르디아는 환하게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웃음이었다.
추모의 관.
순직한 유공자들을 위해 국가에서 제공한 장소였고, 벨베르디아가 추모식 이후로 단 한번도 찾지 않았던 곳이었다. 아니, 찾지 못했다는 쪽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그들 앞에 똑바로 설 수 없었기에 일부러 피해왔었다.
쓰고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쟈켓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네 개의 이름 앞에 똑바로 섰다. 봉투 안에 담아온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각 물건의 주인들에게 올렸다. 오색의 별사탕, 독한 위스키, 입담배, 그리고 또 다른 담배까지. 니나 리브리안. 엔드리트 레버런트. 잔타인 크림슨레이크. 리오 유르칼. 드디어 이 이름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해야하지만, 과거에 묶여있어선 안되었다. 이제는 그 사실을 알았다.
“또 오겠습니다.”
벨베르디아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두 발이 부르트고, 온 몸에 멍이 들더라도 더이상 좌절하지 않고 끝없이 전진할 것이다.
그리하여 부서졌던 기계장치 안 톱니바퀴는 조금 행복해졌다.
BGM : 이승윤 - 달이 참 예쁘다고 (How Pretty the Moon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