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어느쪽 상부인지는 정하지 않았고 그냥 위쪽의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용~_~
벨베르디아는 손 안에 있는 백색의 알약을 봤다. 이쪽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만든 새로운 약이라던가. 이까짓 것을 실험하기 위해 반나절동안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주먹을 휘둘렀고, 으깼으며, 파괴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겨우 이것 때문에. 하, 이걸 만든 작자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길래? 하지만 명령이었다. 원활한 실험을 위해 최대한 다치고 지친 상태로 돌아오라는 명령. 거부권은 없었다. 벨베르디아에게 명령이란 신께서 내린 전언이었기에 이뤄져야 했으며, 수행되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방 안이었다. 작은 침대, 탁자, 의자, 몇 권의 책. 방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사람이든 이 방에서 쉽게 생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한가지, 한 쪽 벽면이 통채로 불투명한 창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벨베르디아는 불투명한 창 너머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안에는 ‘그 분’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재단할 존재가 있었다. 그래. 명령이니까. 더 망설일 수 없었다.
약을 입 안에 털어넣고, 물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목구멍을 통해 약이 넘어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일단 앉아있으면 될까. 침대 위에 앉았다. 피로에 쌓인 몸이 무거웠다. 가만히 있으면 되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얼마나 걸릴까. 차라리 가짜면 좋을텐데. 천천히 눈을 깜
빡였다.
답답한 듯, 입 안에 있는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기분나빠. 불쾌해. 이것이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약 기운 때문인지 구분 할 수 없었다. 아. 시야가 갑자기 휘었다. 몸이 무거웠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이건 뭐지? 무엇이든 잡아야만 해. 가장 가까이 있는 것 아무거나 쥐었다. 이상해. 머리가 아파.
신체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쾅. 땅에 머리를 박았다. 정신차려. 정신차려야해. 호흡을 고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미친듯이 도는 기분.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몇배속으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 그냥 편해지도록 해. 이 흐름에 맡겨.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벨베르디아는 이를 악물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딘가 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조차 없었다.
쥐어야해. 무엇이든 쥐어야해. 나는 그분의 뜻을 따라야해. 실행 해야해. 눈 앞에 썩은 빵을 쥐고 있단 작은 손이 보였다. 고개를 들자 그분이 보였다. 아, 그날이야. 내가 구원을 받았던 날. 아. 아아. 정신차려. 이건 꿈이야. 환각이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어. 손을 뻗었다. 무감정한 그 시선에 닿기 위해, 조금의 값싼 동정을 얻기 위해 나는 애걸했다. 구해줘요. 저는 살고싶어요.
쾅. 소리와 함께 벨베르디아는 땅에 머리를 박았다. 시야에 붉은 흐름이 보였다. 피가 흐르나보다. 하긴, 오늘 많이도 싸웠지. 내가 뭘 위해 했더라. 그래, 명령. 명령을 따라야해. 다시 한 번 손에 쥔 것에 힘을 줬다. 손바닥이 아파왔다. 뭐였지. 내가 뭘 쥐었더라. 슬쩍 고개를 들어 제 손을 봤다. 흉터와 피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제 손 안에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명령을 따라야만 해.
이것을 끝으로 벨베르디아의 기억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