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구역에서 오랜 시간동안 카페를 운영해온 주인은 자신의 가게 한 구석에 앉아있는 두 남녀를 미묘한 표정으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거 아니? 너희 때문에 지금 나까지 숨막혀. 왜 굳이 내 가게에서 이런 어색한 상황을 연출하는거냐고. 주인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을 꾹 눌러담으며 설거지를 이어갔다.
사복차림으로 왔다지만 움직임만 봐도 저 둘은 군인이다. 아마도, 키가 큰 쪽이 상관이겠지. 카페에 들어올 때부터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보였으니 업무 관련 문제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편한 사이도 아닌 듯 했다. 목소리도 일부러 낮춰 말하는 듯 했으나 카페는 그리 넓지 않은 축에 속했고, 손님도 적었기에 주인은 드문드문 들려오는 말소리에 집중했다.
“ ...잘못… 계십니다… 그게 아니라…”
“...생각... 못했는데…”
가게 주인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업무 문제로 불러낸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괴씸하단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쉬는 날에 불러내서 일 이야기를 해? 쉬는 날에는 연락하지 않는게 예의인데! 악덕 상사인 것이 분명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두 사람의 표정에 집중했다. 한 쪽의 표정은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섞인 표정이었고 다른 한 쪽은… 약간의 황당함과… 놀람?
가게 주인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쓰여졌던 한 편의 스토리와 두 인물에 대한 평가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거, 아무리 봐도 후임이 엄청나게 큰 사고를 치고나서 쉬는 날에 상사를 불러내 고해성사를 하는 꼴이다. 그래, 너는 무슨 사고를 쳤느냐. 어서 풀어내지 못할까. 그릇 정리를 끝낸 주인은 가늘게 눈을 뜬 채로 두 사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역사는 승리한 자에 의해 쓰여진다. 기록은 살아남은 자들이 써내린 치열한 생존의 흔적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쓰는 자의 손에서 쓰여지 않은 사실들은 시간과 함께 스러진다. 몇 사실들은 그렇게 잊혀진다.
그렇다면 일부러 누락시킨 사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숨겨진 진실? 진실이란 우아한 단어로 표기 할 내용이 아니다. 치부. 그래, 이것은 치부다. 똑바로 마주보는 것조차 힘들고 본인 스스로가 느끼기에 부끄러운 행동.
벨베르디아는 과거의 자신이 해왔던 일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늘 아래 똑바로 설 수 없는 사람임을 안다. 그 당시의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면책부가 손에 쥐어지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들을 더이상 회피하지 않았다. 언젠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설렁 그 대가로 제 목숨을 앗아가더라도 그것들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피하고 싶었던 사실. 숨기고 싶었던 치부가 있었다. 명령에 의해 그녀가 처리한 사람들이 듣는다면 저주를 토해내도 할 말이 없었으나 개개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다 다르지 않은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벨베르디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동기들, 아카데미 26기 졸업생들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그지 없어서, 죄의 경질의 문제를 떠나 타인을 해친 것보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지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렇게 느끼는 자신이 부끄러워 더더욱 입을 열지 못했다. 이대로 평생 내가 입을 다물기만 해도 몇 사람들에게 약간의 동정을 받으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계속 피하고 피하다보면 결국 이 사실은 잊혀지리라. 그것조차 내가 짊어져야 할 벌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안다. 언제까지 피하고, 모르는 척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물론 아는 것과 직접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벨베르디아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첫 마디가 참 무거웠다. 그간 쌓아왔던 자신의 잘못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도 단어들을 고르고 또 골랐다. 혹여나 제 잘못을 줄여서 말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담아둔 말들을 거진 다 꺼낸 듯 했지만 제대로 전달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제대로 꺼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아니, 두려웠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라도 했던 것 같았다. 그럼. 얼굴에 주먹이 박혀도 할 말이 없지. 벨베르디아는 다 비운 딸기 스무디 잔을 보며 탁자 밑으로 내려둔 손을 쥐었다 폈다. 어색한 침묵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지금까지 들어온 어떤 것들보다 무거웠다. 정말 어려운 일이네. 근데 이게 시작이겠지. 입 안이 바싹 말라갔다.
“네가 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해준 건 나를 아직 동료로 생각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
벨베르디아가 죄악감에 짓눌린 나머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그 무엇보다 아끼는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금강불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강하고 또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면 이제는 내가 너를 다시 동료로서 믿어도 되겠나?”
“...네, 네? 예?”
알렉산더의 말에 벨베르디아는 고개를 들어 눈 앞의 상대의 눈을 보았다. 자신이 당황한 눈으로 보자 또 배신할건가? 라고 물어왔다. 아니,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아니… 저는 맞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어서. 격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알렉산더는 벨베르디아를 가만히 보다 손을 움직였다.
“...???”
“고마운건 고마운거고 괘씸한 건 괘씸한거니까. 그래서, 대답은?”
아프다고 하기 애매한 통증 - 이 부분은 전적으로 벨베르디아의 기준이며, 일반인이었다면 꽤 아팠을 것이다. - 이 등에 느껴졌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봤다면 바보같은 표정으로 알렉산더, 아니 알렉스를 보며 벨베르디아가 되물었다.
“...동료로, 다시 받아주시는 겁니까?”
“그래, 대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동료가 아닌 놈에게 등을 맡기긴 싫거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녹아내리고 부식되어버려 형체조차 알 수 없었던 무언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벨베르디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몰랐다. 이에 대한 인지를 명확히 하기 전에 뒤이어 느껴진 안도감이 더 컸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났다. 환한 미소였다.
“물론입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알렉스 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