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51201 - 하 진
2021-02-24 16:16

시야 가득 넘쳐흐르는 푸른 수국 가운데 자신이 존재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들이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춘 걸까. 라 생각할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자리에 주저앉을 공간은 되어 주변의 꽃들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앉았다. 소리 없는 공간이었으나 제법 나쁘지 않았다. 은은한 수국의 향이 저를 간질였다. 돌아가면 수국을 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첩을 꺼내 보이는 풍경을 옮겨 적었다.

 

  태양이 머리 위를 넘어 수평선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 질릴 만도 한데 질리지 않았다. 무뎌지지 않는 수국의 향이 복잡했던 머릿속을 차분하게 해주는 듯 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부르던 노래를 낮은 톤으로 흥얼거렸다. 꽃을 꺾어 살펴볼까 했지만 제 욕심으로 한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저 자리에 있기에 가장 아름다운 거니까. 자신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편이었다.

 

 

 

  어느 순간 몸에 배지 않았을까 싶은 수국향 사이로 익숙한, 아니 잊을 수 없는 담배 냄새가 코끝을 걸쳤다. 수첩에 옮기던 생각도 내던 진채 향의 방향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몸을 돌린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물결 한 가운데 서 있는 이질적인 백색.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알고 있었다. 입을 열어 그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눈에 보이는 모든 꽃잎들이 하늘로 퍼져나갔다. 흩날리는 꽃잎들 때문에 다가가지 못한 자신의 눈에 흰 남자의 옆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 했다.

 

...라는 거다. 행복해라.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멀리 있음에도 가까이서 말하는 듯 했다. 진한 담배 냄새가 났다.

 

 

 

 

...개꿈인가.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팔을 뻗어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 올려놨던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필터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꿈을 곱씹었다. 푸하, 그 녀석이? 말도 안 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왔다. 담배 옆에 둔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또 삼촌이군. 게으름 피우고 싶었으나 슬슬 일어나야 했다.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창문 위로 푸른 수국 꽃잎 하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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