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11)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다 

(요한볶음 17:26)

 하나로 묶어 길게 늘어트린 흑색의 머리카락을 만질 때면 여자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아름다워요. 주어 없는 말을 하면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굳은살과 흉터가 박혀있는 커다란 손으로 조심스레 여인의 상처를 쓸어 치료했다. 지금이 마냥 좋았다. 순간을 영원처럼, 전장 속에서 피어난 꽃은 행복한 꿈에 젖어 있었다.

 붉게 물든 옷을 입고 피에 얼룩진 거대한 로드를 들고 있는 두 남녀를 비추는 석양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중략)

 부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같은 대지 위에 똑같이 발을 디디고 있어도 개개인의 세계는 현저히 다르다. 내가 남들과 다르듯이.

 별개의 것이지. 웃으면서 자신에게 안부와 근황을 묻는 남자의 말에 형식적으로 답하며 생각했다. 오래 전 부터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하면 이 자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자도 화를 낼까. 그것은 호기심이었다. 작디작은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봐왔기에 든 호기심. 나는 아이를 좋아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 아이를 좋아했던 것은 남들보다 더 때 묻지 않고, 바르게 자란 아이였기 때문이다. 상냥하고, 배려있는 아이. 타인을 속이기 위해 배려라는 가면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대상은 이 아이였다. 그러기에 궁금했다.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쉽게 그려졌다.

 계획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판결은 오래전부터 정해져있었다. 제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했던 까닭이 컸다. 모든 과정은 빠르고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이 사건을 마무리 지어줄, 마지막 선고를 듣기 위해 눈을 감았다.

─따라서, 클레릭 ███를 어콜라이트로 강등한다.

자아, 주사위는 던져졌어. 이제 네 차례야. 에버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