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들은 집은 지루하다며 짐을 싸 도시로 떠났다. 누나들이 떠난 날부터 새긴 나무판에 새긴 줄이 사십개가 넘어갔나. 네크로멘서들이 자주 쓰는 해부용 나이프로 새롭게 판 위에 줄을 그으며 형 몰래 가져온 반쯤 썩은 네번째 손가락 뼈를 입에 물었다. 오도독. 오도도독.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냥 뼈 보단 썩은 뼈가 먹기 편하네. 시시한 생각을 하며 손에 쥔 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렸다.
새로운 것이 먹고 싶었다.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것들은 다 한 번씩 맛을 보았다. 공부를 위해 라는 명목 하에 형 혹은 부모님이 가져오는 동사한 시체들이 가진 물건들은 다 자신의 것이 되었기에 집에 붙어있었지, 그나마도 없었으면 옛 저녁에 뛰쳐나갔을 터. 그러나 카로나의 동쪽 끝 산맥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오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경험이 많은 모험가가 대다수였다. 초짜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그게 그거라 시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슬슬 질려가던 참 이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겨운 백색의 세계에서 나와 4계절이 뚜렷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늘어났다. 얼어붙은 숨이 아닌 따듯한 피를 마셔보고 싶었다. 보고싶어. 그걸 먹고 싶어. 오랫동안 억눌러온 충동이 다시 한 번 그를 부추겼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밖'의 세계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먹고 싶은 것들이 많잖아. 나갈까?
"누, 다 한거... 내가 썩은 뼈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안쪽 문에서 피곤한 얼굴로 나온 넬이 동생이 입에 물고 있는 손가락뼈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 물고 있는 뼈의 끝을 혀로 굴리며 맛을 음미하던 누는 형을 한번 쳐다보더니 와드득, 소리와 함께 집어삼켰다.
"뭐."
"...후. 시킨 숙제는 다 했어?"
"아니."
"...들어가."
팔이 잡혀 질질 끌려가는 와중에도 누의 머릿속 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체력부터 만들어야겠지. 아체르나르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자신과 형이 쓰는 시체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체력부터 만들고, 그 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다른 생각 그만하고! 다 끝내기 전 까진 밥 없어."
눈앞에 보이는 왼손 넷째손가락이 없는 - 자신이 조금 전에 먹어버린 - 뼈 조립부터 해야 했다. 배가 고프면 뼈를 먹으면 되지만 형의 잔소리는 먹을 수 없으니. 아직은 참아야 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