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열병이었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창문을 통해 건너오는 공기의 온도로 간신히 눈치 챌 정도로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침대에 누워만 지냈던 시간이라 단언한다. 몸이 무거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처음 깨닫게 했었던 시간 이었으나 동시에 내 안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라 회상한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아버지는 인맥과 돈을 동원해 유명한 사제들이 와서 내게 치료를 시도했으나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들었다. 내 열병의 원인은 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원인을 깨달은 순간 나는 비로소 나비가 되었다. 그 모든 고통이 끝난 뒤에 본 창밖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했다. 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죽어버린 과거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여동생은 나를 기적이라 말했다. 그 표현은 잘못되었으나 정정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할 사람은 그 아이가 아니었다. 몇 달 뒤, 이제 몸은 괜찮냐며 걱정하는 네 목소리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내게 너무나도 눈부신 그대. 네 앞에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버려. 사소한 몸짓, 목소리, 전달하는 언어 그 모든 것이 내 세계 구석구석 파고들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사랑해. 라는 말로는 이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 내 안의 세계를 담기에 너무나도 부족하지 않은가. 이것은 분명 사랑이란 감정 뿐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 감정은 빛만 가진 것이 아니기에, 네게 보여줄 수 없었다. 네가 보고 들을 수 없는 공간에서 한 행위들은 절대 네게 닿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 충분했다. 나와 너의 관계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연하지만 닿지 않는다. 너는 그런 존재다. 일방적인 관계는 잔인하다. 이제는 그 잔인함을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 네가 주는 고통은 무엇이든 즐겁게 받을 수 있다. 너는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도 감사한.
아아, 나의 빛.
세상이 내게 빛이라 말했으나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너 뿐이다. 그 구원이 내 모든 것을 망가트리더라도 네가 주는 모든 것을 겸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손 안에 잡힌 물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틈새로 빠져나갔다. 놓치기 싫어 으스러질 정도로 쥐어보았으나 조각난 채 내 손을 떠나갔다. 몇 번을 더 겪어본 뒤에야 알았다. 내 손에 쥘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흐르게 두었다. 다만 약간의 장난을 치곤했다. 가질 순 없어도 얻는 것은 있어야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때로는 앞길을 막고, 돌을 던지고, 잘 흐르게 돕기도 했다. 그 모든 행위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편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이 명제에 예외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 왔을지도.
멋대로 들어온 것은 내쫓기도 전에 제 자리를 잡더니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내쫓기 위해 잡으려 하면 도망갔지만 그저 쓰다듬기 위해 다가가면 얌전히 있었다. 이상했다. 가지고 싶은 것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쥘 수 없었는데. 내 통제범위 안에 있는 것처럼 지내다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했다.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이론상으로 알고 있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꿈은 꿈이기에 존재하는 것. 그러나 그 시간이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여러 가지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