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BGM : 악동뮤지션 - 뱃노래
익숙한 장소에서 겪는 생소한 경험을 말하라고 하자면 그는 한참의 침묵 끝에 그 순간을 말할 것이다.
눈 앞의 압도적인 열기는 제 다리를 땅에 묶어두기에 차고도 넘쳤다. 제 키보다 한참 큰, 아마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큰 사람들이 여럿 오더라도 집을 뒤덮은 붉은 화염을 제압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근처에 사는 몇 어른들이 근처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불길을 줄이려 했지만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가소롭다는 듯 불길은 더더욱 거세져만 갔다. 흉물스럽게 타오르던 붉은 불. 우지끈, 하고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 사이에서 희미한 노래가 들렸다. 소년은 그 노래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졸릴 때면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며 노래를 불러주던 여자. 아이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하자 아이를 지켜보던 어른이 그를 막았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이제와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그래도 들어가야만 했다. 제 몸을 막고 있는 남자의 팔을 풀어내려 했지만 그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집 전체를 지지하던 기둥 중 하나가 무너지자 지붕이 기울였다.
소년의 귀에 노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직, 아직 살아있잖아. 간신히 남자의 품에서 빠져 나와 집 앞으로 뛰어가던 소년의 코 앞에 지붕이었던 것들이 무너졌다. 노랫말이 조금씩 끊기기 시작했다. 쉼 없이 흐르는 눈물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 앞으로 갈 수 없었다. 자신을 막았던 남자가 자신을 끌고 뒤로 물러났다. 지금껏 들은 적 없는 큰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노래 소리도 끊겼다. 소년은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었다.
온 몸에 달라붙은 옷. 피부 위로 흐르는 물. 시야를 가리는 자신의 머리카락. 시커멓게 변해버린 자신의 집이었던 것. 소년은 그제야 비가 왔음을 알았다. 왜, 왜 이제 왔어. 야속한 하늘을 바라봤다. 우중충한 하늘을 보던 제 머리 위로 부드러운 안감을 가진 코트가 떨어졌다.
"...?"
시야를 가린 코트를 대충 제 어깨에 걸치며 옷의 주인을 올려다봤다. 한참이나 큰 남자는 며칠 전 제게 귀족이 되고 싶은지 물었던 마법사였다. 그제야 남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 받아 간다고 했던가. 그게 이런 뜻일 줄 몰랐는데. 과거의 자신을 원망할 힘 조차 없었다. 지친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본능적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겐 남자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아둬.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려. 그게 내 첫 번째 가르침이다.”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년과 눈을 맞췄다. 마법사의 얼굴을 자세히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가 오고 있지만 남자 주변에서 느껴지는 원인 모를 열기.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자신과 똑 닮은 눈매와 눈동자.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상대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 대체 왜? 허망함, 원망, 의문 등이 뒤섞이면서 두통이 생겨났다.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뚝, 뚝 끊기는 느낌. 사실 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간신히 들 때 즈음 남자가 제게 손을 내밀었다. 무표정으로 일관되었던 상대였지만 그 순간 만큼은 남자의 얼굴은 어쩐지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었다. 꿈이라면 빨리 깼으면, 하며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는 반대쪽 무릎을 꿇으며 아이의 손을 잡아당겨 제 품에 안았다.
“너는…”
빗소리에 얼룩진 말을 끝으로 데킬라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꿈 속의 두통이 현실까지 이어져왔는지 머리가 아팠다. 손으로 몇 번 미간 사이를 누르고는 창 밖을 봤다. 바지런한 새조차도 아직 자고 있을 시간, 어두컴컴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남아있는 통증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 앞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로 제 이름 뒤에는 문라이즈라는 성이 붙었다. ‘데킬라’ 라는 이름 세글자를 제외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성에 온 뒤 며칠은 독한 감기몸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몸 위에 부드러운 옷감이 덮여졌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제게 호의를 표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반년 뒤 만났던 작은아버지이자 스승인 라스 문라이즈가 아니었다면 오래 전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녀석을 만났다.
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동화 속 왕자님. 비비안을 처음 봤을 때의 감상은 그랬다. 그리고 검을 맞댄 후 제가 넘을 수 없는 벽임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자란 천재가 바로 이런 모습일까? 자신에게 보이는 호의와 호기심을 좋게 돌려줄 수 없었다. 그의 행동이 가식처럼 느껴졌고 위선으로 보였다. 그래서 밀어냈다.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더더욱 검에 집중했던 것 같았다. 온 몸에 근육통이 일어도 검을 손에 쥐고 있을 때면 숨이 트였다. 그 순간 만큼은 상대와 자기 자신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유일한 무기. 억지로 기워둔 제 성이 다시 떨어져나갔을 때를 대비한 마지막 활로처럼 느껴졌다. 강해지고 싶었다. 강해지면 자신이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조금만 더 넓어질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살기 위해 포기라는 단어를 버렸다. 백 번을 해서 안 될 경우 천 번을 하면 길이 보이겠거니, 같은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첫 번째 목표는 제 눈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무엇보다 높은 산, 비비안 이었다.
“실비아!!!!!”
“스승님, 아직 할 수 있습니다.”
분노한 라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손에 쥔 검을 놓지 않았다. 왼쪽 눈의 부상 탓에 상대의 위치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기에 시력을 포기했다. 자신을 보고 있는 눈이 많았다. 이곳에서 물러난다면 이 집안에서의 자신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지리라. 생존을 향한 갈망과 긴장이 고통을 둔화시켰다. 귀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뒷걸음 반 보. 평소의 습관을 생각한다면 주변의 시선을 보며 빈틈을 노리려 하겠지. 나를 다치게 했다는 것에 흥분해 시야가 좁아 졌을 테고. 몸을 흔드는 척 하며 검을 고쳐 잡았다. 예상한 방향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런 수를 써도 이정도 이십니까, 실비아 누님.”
“이…익…!”
“그만! 둘 다 거기까지!”
그나마 멀쩡한 오른쪽 눈을 떴다. 상대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떨지 예상이 갔다.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라스의 기척이다.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다. 코 끝에 닿는 향, 자신의 스승이 자주 쓰는 향수 냄새. 코트로 내 얼굴을 가린 것 같았다.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손에 든 검을 내려 검집에 넣었다. 후들거리는 모습은 보여지지 않은 듯 했다. 수고했다. 나머진 내게 맡겨라.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말을 듣자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힘이 빠졌다.
눈 앞에 보이는 손가락을 향해 시선이 움직였다. 제 앞에서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여보던 사제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손가락을 폈다. 둘, 다섯. 하나. 몇 번의 확인 끝에 사제는 오케이 사인을 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라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제가 돌아간 뒤, 데킬라는 붕대를 풀고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시력은 그렇다 쳐도 왼쪽 눈에 깊게 남겨진 흉터는 오랫동안 남아있을 터. 이 흉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문라이즈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몇 가지 계산을 끝내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라스에게 입을 열었다.
비비안이 라스의 저택에 온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였다. 어느정도 회복된 데킬라는 붕대 대신 안대를 쓰고 있었고 평소처럼 연무장에서 검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아직 어색한 시야 탓에 잔실수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 달려와 이리저리 살피려고 했다.
“데킬라! 괜찮은거냐!”
“신경 쓰지 마라, 비비안.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데킬라는 자신의 안대에 올라간 비비안의 손을 쳐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비비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부러 무시하며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다친 이유에 대해선 이후 라스에게 들었겠거니, 싶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비안은 지금까지 제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1%의 가능성이 두려웠다. 만약, 만약에. 이 온기에 익숙해졌다가 자신이 상처받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데킬라에게 있어 비비안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 모두에게 사랑 받는 사람처럼 보였기에 받은 것들을 그대로 돌려주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의 다정함이 무서웠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후, 비비안에 대한 편견이 바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저택의 주인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집을 비우고, 비비안과 데킬라 단 둘이서만 있었을 때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데킬라는 아침부터 연무장에서 검술 연습을 마치고 산책을 위해 저택 근처의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음.”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암살자들을 처리하고 있던 비비안이었다. 마지막 한 명까지 처리를 하는 걸 보고 다가가 죽은 시체들을 확인했다. 실비아를 포함한 문라이즈 가의 사람들은 라스의 저택에 암살자를 보낼 정도의 베짱은 없었다. 그러면, 설마? 싶은 마음에 비비안을 보자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1시간 내로 집 주인이 돌아올텐데. 일단 이것부터 치우는 게.”
시체들을 정리하면서 데킬라는 드러내진 않았지만 여러가지로 놀랐다. 첫 번째는 비비안이 하는 행위들에 꽤 익숙해 보였던 것이고, 두 번째는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자신이 그에 대해 얼마나 잘못 생각해왔는지, 비비안에 대해 알고 있던 여러 정보들을 추가 및 수정해야 했다.
데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날 하루를 보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 비비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머리 속에서 정리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자기 혐오가 일었다. 상대의 불행을 보고 안도하다니, 바닥까지 떨어졌구나 데킬라 문라이즈. 자괴감이 들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비비안에게 조금씩 유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죄책감도 죄책감이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베푸는 호의를 마냥 거절하기 미안했던 것도 한 몫 했었다. 똑같은 호의로 돌려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도록 노력했다. 누군가는 이런 것도 노력해야 하냐고 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데킬라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의식해서 의심을 줄이고, 무의식적으로 쳐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했던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 행동들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기 또래 중에서는 비비안이 유일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익숙해질 무렵에는 묘하게 편안하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데킬라가 제 몫의 요리를 하면서 비비안의 몫까지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비비안은 데킬라의 첫 번째 예외가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데킬라는 열 개의 시험과 성인식을 모두 끝냈다. 약간이지만 집안에서 진행하는 일을 맡았고, 기사단 내에서도 나쁘지 않은 평판을 쌓고 있었다. 이전보단 자신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그렇다고 넓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의 자신이 상상했던 성취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온 몸이 무거운 늪에 잠겨가는 느낌. 지금의 심경을 솔직하게 말하라 하면 데킬라는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방향성조차 잡히지 않았다. 목적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짐승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크게만 느껴졌던 문라이즈의 성은 작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숨을 트고 싶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그녀가 궁금해졌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가 살던 곳, 자신을 낳기 전의 그녀가 해왔던 일들. 그녀는 단검을 잘 다루곤 했고, 자장가 대신 뱃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평소보다 생기가 넘치곤 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고 어릴 때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억양은 바다 사람의 것이었다.
목적이 정해지자 계획을 만들고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채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자신의 이런 준비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은 실비아 였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을 둘러보고 오기 좋은 나이 때라고. 다양한 곳을 다니며 식견을 넓혀야 미래의 문라이즈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라스를 설득했다. 그 뒤에 숨겨진 속내가 너무나도 투명했지만 데킬라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목적은 어찌되었든 그녀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순순히 그녀의 주장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문라이즈 남매의 첫 합작은 성공했다.
적당히 귀족 기사로 보이되, 가문은 밝히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불편한 점들도 많았지만 어떤 점에선 문라이즈 성보단 편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도 많이 있었지만 이름 뒤에 붙은 성씨만큼은 쓰지 않았다. 나름의 규칙이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며 용병 생활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곳을 수소문해 도착한 곳에는 자신이 아주 잘 아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 있을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당황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더니 그는 자신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리고 같은 배에 승선했다.
데킬라는 자신이 이곳에 오려던 원래 목적을 이뤘다. 동료보단 라이벌에 가까웠던 사람에게 자유롭게 배와 배 사이를 뛰어다니던, 자신은 그저 상상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들었다. 그 모든 것을 다 들은 뒤에는, 허무했다. 그래서 바다를 봤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데킬라는 또다시 목적을 잃었다. 문라이즈 영지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돌아가봤자 나오기 전처럼 매일 목숨만 연명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데킬라 문라이즈로써의 삶보다 데일의 삶이 훨씬 더 자유로웠다. 일단 새로운 목적을 찾을 때까지만 바다에 남아있자. 데킬라는 이 사실을 비비안에게 알렸다.
그러나 데킬라는 물으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배에서 내린 늦은 밤. 다들 골아 떨어진 시간을 틈타 부둣가로 나왔다. 사람이 없는 곳까지 가서야 데킬라는 바위 한 켠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름 뒤에 문라이즈라는 성이 붙은 뒤로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어본 적 없는 낡은 기억을 들췄다. 기억 속에 있던 것을 제 입을 통해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마디는 노래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주 느리게 시작했다. 처음이 힘들었을 뿐, 그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느리게, 중얼거림에 가까웠던 것은 점차 운율이 붙고, 음이 붙었다. 세 번쯤 반복 했을 무렵 그럴싸한 노래가 되었고 다섯 번이 되었을 때는 누군가 들으면 울컥했을지도 모를 것이 되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앉아 노래를 부르던 데킬라는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부르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해가 뜨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수도 없이 봐온 일출이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다가왔다.
당신의 세계는 이렇군요.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데킬라는 흘러내린 눈물을 대충 옷 소매로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