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91220 - 데킬라 문라이즈 #2
2021-02-24 15:47

 

 

 

 문라이즈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가장 먼저 버린 것은 자신의 욕망이었다. 그 다음은 솔직함이었고, 마지막은 자신의 호불호였다. 욕망을 억누르고, 줄여내고, 싫어도 참아내는 것. 그것들에 익숙해지자 아무리 불쾌하고 싫은 일을 하더라도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일에 감정을 개입하지 않게 되자 효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토악질이 나올 뻔한 것을 의식적으로 참아낸 것이 몇 번이었더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었지만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 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저도 모르게 떠지는 눈. 익숙한 시야. 제 옆에 느껴지는 온기...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통증. 데킬라는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비비안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허리에 팔을 감은 채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행위를 왜 지속하고 있을까.

 

 맞닿은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온기는 몸을 섞는 횟수가 한자리에서 두 자리가 되었음에도 적응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사실, 적응한 것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은 적응하지 않으려 있는 힘껏 회피하고 있었다. 행위를 하면서 얻는 특유의 감각도 그랬다. 지금껏 억눌러왔던 자신의 충동이, 본능이 뛰쳐나오려고 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비비안은 어떻게든 참아내려는 자신의 끝을 봐야겠는지 자신을 한계의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사실 데킬라는 온기가 좋았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긁어 내리는 행위가 좋았다.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고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잠시나마 가지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쳐내지 못하는 걸까.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한 때는 다시 밀어낼까 고민했지만 한 번 알아버린 그 온기를 다시 잃을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혀왔다.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을 크레이든. 녀석은 내게 태양이었다. 영원한 밤이 없는 것처럼, 어둠 사이에 깊숙히 숨어있는 나를 찾아내 기어코 빛을 비춰주는 태양. 그의 행동들은 그러한 의도로 한 것들이 아니었겠지만 나는 네 앞이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곤 했다. 바라볼 수 없었다. 부끄러웠고, 내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찾지 못하게, 그걸 묻어버린 자신 조차도 잊어버리도록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망할 자존심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그 감정들은 모두 검으로 향했고, 벽을 쌓는데 돌렸다. 괜찮아. 여기까지야. 여기서 끝내야만 해. 데킬라는 필사적이었다.

 

 배에서 먹었던 약의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차마 말하진 못하지만, 반은 맨정신이었다. 사람들이 술을 핑계로 솔직해지는 것처럼 데킬라는 약을 핑계로 억눌렀던 본심의 일부를 보였다. 빌어먹게도, 나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좋았다.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내게 이런 모습도 있다니. 그 뒤는… 모르는 척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그 와중에도 방음을 신경 써주는 배려가 좋았다. 그래. 좋았다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이 이상은 안돼. 데킬라는 감히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감정과 비비안이 가진 감정이 다르기에, 지금의 마지노선까지 넘어서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바다에 남으려고 한 것은 멀어지기 위한 자신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그 발악은 가볍게 무너졌다. 그래. 나는 네게 패배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어. 한 번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들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금껏 자신의 모든걸 제대로 통제해왔다고 생각했으나 크나큰 오만이었고 착각이었다.

 

 크레이든.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진득한 늪에서 간신히 숨을 튼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뭘까. 입 밖으로 내뱉으니 그 뒤에 같이 흘러나오려는 수많은 단어들, 감정들을 간신히 제어했다. 몇 단어들을 고르고, 또 골랐다.

 

네 눈에 비친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

 

손에 쥔 머리 끈이 물결에 따라 흔들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마주한 순간이었고,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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