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주도하는 주된 생명체 중 하나인 인간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곤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그들이 내는 소리를 들어본 결과 유전, 재능, 환경, 감정. 크게 네 가지의 변수에 의해 소리의 질이 달라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에서도 주체 대상에게 있어 우선순위가 되는 물질, 존재와 함께 있을 때 나오는 감정 섞인 소리는 유난히 따듯한 느낌을 받곤 했었다. 그들은 대상에게 '사랑', '소중한' 따위의 표현을 쓰곤 했다.
낯선 단어였다.
150 전후의 수명을 가진 마도학자에게 유그드라실 전투는 생에 단 한 번 있는 전투였다. 분명 가치 있는 기억이 될 것이고, 그의 삶에서 단기간에 많은 존재와 긴 교류를 가졌던 유일한 기록이 될 것이었다.
중요하다는 단어와 소중하다는 단어가 동의어가 될 수 있는가? 아니다. 지금의 기억이 소중한가?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비교 할 수 있는 기록을 꺼냈다.
기억이란 이름의 서재에서 오래 전에 불타버려 책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기록과 만약을 위해 별도로 기록 해둔 책의 줄거리만 남아있었다. 자료가 완전하진 않았으나 비교하는데 이정도면 충분했다.
의도적으로 존재를 잊고, 완전히 불타버려 재가 된 戀이란 제목을 가진 책. 자신이 이런 기록을 했던가. 자신의 기록임에도 어색했고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흔적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사랑은 불과 같았다. 스스로를 불태우는 불. 결국 찌꺼기만 남는 불. 낡은 재만 남은 이 기억을 자신은 소중하게 여겼던가? 레티시아의 답은 정해져있었다.
"모르모트에게 정을 주는 건 멍청한 일이죠. 과거의 나는 멍청한 행동을 했고."
불타버린 기록을 다시 살피며 기억과 함께 묻어두었던 하나의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 감정의 이름은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