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x년 11월. 플로뢰, 노르웨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면서요.”
“네. 약속을 지켜야 해서요.”
개인공방 겸 거주지를 정리하고 소공방에 보고하기 위해 간단한 짐을 챙겨 나오던 중년의 남자, 레티시아는 친분이 있던 주민이 말을 걸어오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외부인을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리던 사람들과 달리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유난히 자신을 챙겨주던 자였다. 거리에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상대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꺼냈다.
"아아, 멕큘씨가 떠나면 우리 집 피아노 조율은 누가 해주나."
"조율 프로그램을 쓰면 되잖아요?"
"느낌이 다르다고요! 일류 쉐프가 만든 음식이랑 프로그램이 만든 음식은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날 너무 하늘로 띄워주네요. 잠깐 상태를 볼까요."
"얏호~!"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도구들을 이용해 피아노를 조율을 마친 레티시아는 건반을 두드렸다. 오래 전 장인으로 불렸던 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피아노는 한 세기가 흘렀음에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12년 전, 타지에서 우연히 만난 친우를 기쁨과 감동을 피아노에서 느꼈다면 믿을까. 마지막으로 상태를 점검한 레티시아는 손때가 많이 묻은 도구들을 정리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익숙하게 몇 개의 건반을 누르자 . 그 모습을 보던 피아노의 주인은 근처의 의자에 앉아 청중이 되었다. 레티시아는 자리에 고쳐 앉으며 페달을 밟았다. 그날의 온도, 습도, 지역 기후 등을 모두 고려한 조율과 그간의 연륜이 합쳐진 피아노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화답했다.
“'Ballade pour Adeline(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죠. 어쩐지 마지막이란 느낌이 들어요. 멕큘씨,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슬슬 일어나야겠네요.”
애매모호한 답을 한 레티시아는 천천히 피아노 뚜껑을 닫은 뒤 그 위를 쓸었다. 그리고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방의 주인에게 옅게 미소를 지은 뒤 작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오랜만에 돌아온 마도공방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약간의 절차를 밟은 뒤 안내 받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개인공방에 있던 자료와 성과들의 대부분은 중앙으로 넘어갔다. 가지고 있는 것은 들고 있는 가방 속 짐이 전부였으나 그 안의 내용물도 곧 처리할 예정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요청했던 대로 방 안은 깔끔했다. 들고 있는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나 있는 의자를 끌어 방 가운데에 두었다. 창밖이 잘 보이는 자리였다. 의자에 앉아 밖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어느 순간 레티시아는 자신의 연구가 완성되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호기심이 죽었음을 알았다. 당황스럽진 않았다. 그렇구나. 하고 그는 스스로에게 납득했다. 그 뒤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주고받았던 다른 마도학자들과의 연락의 주기를 늘리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기록들을 모았다. 중앙에 연락해 절차를 밟으면서도 이상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련의 행동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 레티시아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변했다가 다시 한 번 돌아왔음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지쳤던 걸지도.
반쯤 눈을 감은 레티시아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타인이 내게 준 것들
내가 타인에게 준 것들
나는 과거를 통해 변했지만
기록은 현재를 지키며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波聲을 만들어가겠지
찰나가 영원이 되는 순간.
내 연구는 완전히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