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 감사하렴. 일리야 볼코프는 이 말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갈 곳 없는 자신과 여동생을 받아주고 키워준 그들은 많은 것을 신에게 의탁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던 것들은 더더욱 심해졌다. 마냥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방향을 틀었다.
머리가 제법 굵어지자 자신을 다독이던 손길이 혐오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제법 독실한 가톨릭 신자 흉내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의미 없는 말의 나열일 뿐인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심은 침전되고 남은 찌꺼기들은 부유했다. 양부모가 바라는 모습을 따라 할수록 생각은 굳어져갔다. 돌아오지 않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며 신은 인간에게 무엇을 해준단 말인가. 무엇을 원하기에 이러한 사상을 내세우는가. 그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일랴, 난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자신의 품에 안긴 여동생은 상처투성이였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제 품에서 가늘게 떠는 모습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꼈다. 자신과 달리 여동생은 양부모에게 끝까지 반항했다. 자신이 할 반항까지 대신하겠다는 듯이 반항의 정도는 심해져갔다. 여동생을 잘 달래보라는 말 만큼은 따를 수 없었다. 제몫까지 소리치는 작은 입을 어떻게 막으란 말인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동생의 상처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여기를 태워버리면 우리는 더 상처받지 않게 될까.
내가 어른이 되면 네게 상처 주는 사람 전부 다 태워줄께.
작은 상처 하나에 몇십번이고 되뇌였던 말들. 스쳐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품 안의 작은 아이는 세계 그 자체였다.
"우리는 조금,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아."
술 상대가 갑작스레 꺼낸 주제에 안테로는 마시던 맥주 캔을 떨어트릴 뻔 했다. 얼빠진 얼굴로 상대를 쳐다보자 그녀는 바보같이 생겼다며 배를 잡고 웃었다. 또 다른 사고를 치려는 건 아니겠지. 능력을 쓸 때의 부작용으로 오던 두통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손에 쥔 것을 던질 것 같아 그는 마시던 맥주 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냐."
"충동적으로 이런 말 하는거 아니야."
"..."
"우리는 그동안 서로만 챙겼잖아. 일, 나는 밖을 보고 싶어."
내가 지켜온 작고 가녀린 아냐는 어디로 간걸까, 안테로는 자신을 똑바로 보며 말하고 있는 아나스타샤의 시선을 바로 볼 수 없었다. 통보에 가까운 말을 마친 여동생이 자신의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갈 때 까지 안테로는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팔목에 차고 있던 묵주를 풀어 손에 쥐었다. 이제는 없으면 어색하나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끔찍이도 싫어했던 물건이었다. 족쇄라 생각 했던 것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았고, 해와 달이 기울수록 가벼워졌다.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챠라락. 알알이 나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없었다.
나는 네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 지금도 잘 잘 모르겠어... 문이 닫히기 전까지 입 안을 돌던 말은 다시 가라앉았다. 남겨진 잔재 탓인지 입 안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