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불만이야? 표정이 왜그래."
지적을 유도한 단어선택이었으나 상대는 인상을 잠깐 찌푸린 채로 의자에 앉아 자신을 노려본 것 이외의 반응은 없었다. 뭐야, 이 녀석. 오른쪽 볼을 꾹 잡아당기자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너절해질 정도로 씹은 담배는 힘을 잃고 아래로 기울어져있었다. 이 새끼는 죄 없는 담배는 아깝게 씹고 지랄이람. 물고 있는 담배를 뺏어 자신의 입에 물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상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 번 더 손을 까딱이자 상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일할 때는 금연이잖아."
"내 앞에 있는 어떤 멍청한 새끼 때문에 안 피울 수가 없네. 두 번 말하게 할 거야? 불 붙여."
그제야 치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남이 물었던 걸 뺏어 무는 취미도 취향도 없는데. 뚱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일었다. 내가 왜 이놈 때문에 규칙도 깨고 휴식 시간을 소모해가며 있는 걸까. 엿이나 먹어라. 입 안의 연기를 얼굴에 훅, 내뱉자 낮은 욕설이 들려왔다. 꼴좋다. 웃으면서 녀석의 가방을 뒤적여 익숙한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 재를 털었다.
"왜 그러는데. 이유나 알자."
"..."
"...답답한거지? 네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는 거고."
어떻게 알았냐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자니 한숨이 나왔다. 이새끼를 어찌면 좋을까. 아나스타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 오라비, 일리야는 자신을 위해 많은걸 포기해왔었다. 그것들이 너무 당연해진 나머지 그 외의 것들을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멍청이. 뭐가 문제인지도, 어떻게 해야 풀리는지 조차 모르는 가여운 사람. 25년 동안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며 켜켜이 쌓여온 죄책감과 부담감을 더 견딜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핑계를 대며 그의 품에서 나왔다. 어느 것이 최선인지 그녀도 알지 못했지만 떨어지면 보이는 것이 있으리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내용이었지만, 평생을 함께해온 상대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 수록 이 결정이 옳았다고 아나스타샤는 생각했다.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도 그의 그림자 중심에서 외곽까지 걸어 나왔다고. 스스로 일어서 걸을 힘이 가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눈앞의 그는 여전히 자신의 그림자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덩치만 커졌을 뿐 19년 전과 다를 게 없잖아. 성인이잖아. 우린 서로에게서 독립해야해. 그녀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아냐, 죽이고 싶은 사람 없어?"
"미친놈아; 아무리 그래도 분풀이 살인은 아니지;"
멍하니 앉아있던 그가 갑자기 꺼낸 말도 안되는 말에 저도 모르게 왼손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여기서 자신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더라면 최소한 상대의 팔다리 하나는 흔적도 없이 타버리게 될 터. 전적이 있는 상대의 말에 혹하지 않도록 아나스타샤는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몇 진상들의 이름을 모르는 체 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일리야는 맞은 곳을 쓸며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더 볼 수 없어 집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든 표정.
"멍청아, 그 얼굴 하고 나 만나러 오면 내가 가장 아끼는 연장으로 패줄 거니까 당장 꺼져. 고치기 전에 오면 너 나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일리야를 가게에서 내쫓은 뒤에야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한 말을 깨달았다. 아, 이놈의 성질머리... 머리를 벅벅 긁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휴게실에 주저앉아 죄 없는 머리카락만 잡아당겼다. 몰라, 저 인간도 스물일곱인데 이번 기회에 강하게 키워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지. 설마 못하겠어. 그녀는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휴게실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