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50218 - 느아 비
2021-02-24 16:30
오늘은 빨래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감겨오는 눈을 비비며 집 밖으로 나오자 물을 마시고 있던 아빠가 스스로 일어난 자신을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웃었다. 엄마는 이미 옷, 커튼, 식탁보 등등을 통 속에 집어넣고 가져온 물을 붓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가져온 의자를 통 옆에 놓았다. 의자 위로 올라왔지만 들어가기엔 조금 부족했다. 낑낑거리는 느아비를 보자 엄마가 재밌는 걸 봤다는 듯이 마을이 떠나가라 웃었다. 부끄러워 소리를 빽 지르려니 갑자기 허리에 손이 올라왔다. 고개를 위로 올리자 갑자기 시야가 하늘과 가까워졌다가 발밑에 물에 젖은 빨래거리들이 잡혔다. 앗, 차거! 놀라서 뒷걸음질 치자 자신이 넘어지지 않게 어께를 꼭 껴안아주는 체온이 느껴졌다. 이러면 괜찮지? 아빠의 목소리였다. 짜증이 사르르 녹았다. 까치발을 들어 아빠의 볼에 입 맞추고 통 안에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옷이 튀겨진 물에 물들어 가지만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물놀이를 하기 힘들었다.

 정신없이 놀다보니 해가 머리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재밌어? 산책하러 나온 이웃집 아저씨였다. 아저씨도 같이 놀래요? 아니, 아저씨가 들어가면 통이 망가져서 혼나. 아참, 그렇지. 그럼 어쩔 수 없겠네! 실망한 표정의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들어와서 밥 먹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까치발을 들어 나가려고 했지만 닿지 않았다. 발 밑에 잡히는 옷들을 한 곳에 모았다. 모아놓고 보니 제법 높이가 되는 듯 해 뿌듯해졌다. 모아놓은 웃더미 위로 발을 디뎠다. 두 발을 올리자 끝이 손에 닿았다. 있는 힘을 다해 매달렸지만 넘어가질 못했다. 떨어지면 어떻하지? 하는 순간에 팔의 힘이 풀렸다. 앗- 소리를 내기도 전에 떨어졌다. 차가운 물이 온 몸에 달라붙었다. 서러워졌다. 엣취. 설상가상 한번 나오기 시작한 재채기가 멈추질 않았다. 엣취. 엣취. 에엣취. 재채기 하다가 죽으면 어떻하지? 눈물이 펑펑 나왔다. 빨래통에서 죽는 건 싫어. 엣취. 훌쩍. 엣취. 쿨쩍. 눈물과 콧물이 뒤섞였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나 좀 꺼내줘. 어디있는거야. 배고파. 추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이 보였다. 어? 하는 사이에 몸이 들려졌다. 푸근한 미소가 보였다. 아이고, 우리 나비 통에서 나오지 못해서 서러웠구나. 귓가에 따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다!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이 너무 좋았다. 통과 점점 멀어졌다. 문이 열리자 호두파이의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같이 먹어요. 나비야, 할애비는 먹고 왔는걸. 할아버지가 날 구해줬는걸! 엄마랑 아빠는 날 버렸는데!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가 억지를 부리자 부모의 눈치를 봤다. 먹고가세요. 파이는 많이 했는걸요. 맞아요. 같이 먹어요. 느아비, 너는 옷 갈아입고 와. 배고프단말야~ 아이가 울먹였지만 엄마는 냉정했다. 느아비의 일상에선 늘 있던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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