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80813 - 후 연오
2021-02-24 15:36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지요. 그러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신을 응시하는 주의 얼굴 속에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다.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고, 실제로 가졌던 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의사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기분과 행동에 의해 모든 결과가 정해졌었다. 거부하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고, 주변을 망가트리고, 맘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곳조차 없애 내 곁이 아닌 곳에선 살 수 없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행동을 꽤 오랫동안 해왔었다. 그렇게 가져온 것들은 모두 제 품에서 망가지거나 무너졌었다. 온전히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손안에서 사라지는 허무함을 몇 번이나 겪었던가. 구멍 난 독에 금 간 작은 바가지로 물을 붓는 것처럼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이 쌓여만 갔다.
 반복되는 행동과 경험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많은 것들을 많은 것들을 무디게 만든다. 처음의 강렬했던 감정들이 무심해지는 속도 또한 점점 빨라져 갔다. 지금의 감정도 곧 스러질 텐데내가 욕심을 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당연했다.
자신을 스쳐간 그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했었노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뒤흔들었던 모습은 내가 그들의 날개를 꺾는 순간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때부터였을까. 손에서 힘이 빠졌다. 손안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을 잡지 않게 된 시점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전처럼 허무하진 않았다. 이것이 완전한 해소법이 되진 않았지만 망가지는 과정을 보던 것보단 괜찮았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가졌을 때의 그들의 표정은 보기에 퍽 좋았다. 그들의 행동을 돕지도 않았지만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냥 가게 두었을 뿐이었다. 결과가 좋은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제 몸을 불사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진실이자 거짓이다. 사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가 처음부터 포기하고 싶었겠는가. 가지고 싶었다. 긴 시간 동안 해소하지 못한 갈증이 제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싶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쫓는 풍경에 함께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곁에 있기엔 그들은 가볍고, 자신은 무거웠다. 그나마 견디는 자는 곧 변질되어버렸다. 변하고, 닮아버리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그 사실에 지쳤다. 또 다른 기대를 하기엔 자신은 너무나도 낡아버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게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했다. 분명 자신은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감정은 제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깨달은 진리는 평생 해소되지 않은 갈증을 억누르는 훌륭한 족쇄가 되었다. 내가, 그리고 상대가 변하는 것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제 인생의 절반을 조금 넘은 자가 자신을 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리며 능숙하게 진심과 거짓을 섞어 말했다. 

 날개를 다 뜯어내 내 품에 두어 죽어가는 모습까지 다 가져야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렇지만... 새는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그다운거야. 뭐... 지금은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처음의 그때처럼 강렬한 감정이 생기면 또 달라지겠지?

 이제는 어느 쪽이 제 진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런 류의 감정을 더 가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을 뿐이다. 





진영반전 ~ 백타연오 -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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