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50214 - N.B
2021-02-24 16:32

-어렵군요. 많은 환자들을 봤었습니다만, 이런건 처음 봅니다.

 

 

 

 혹시나 싶어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아니, 아는 체 했더라면 의심했을 것이다. 대륙 어디에도 자신과 비슷한 병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 원인도 명칭도 알지 못하니 고칠 방법도 없었다. 성직자 말고 소서러를 찾아야 하나. 성당 근처의 노점에서 산 쌀과자를 입에 우겨넣었다. 허리까지 올라온 '이것'은 느릿하지만 확실히 자신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자신에게 무관심한 편이지만 오늘처럼 시끄러운 날은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쓰게 된다. 사람들이 옷을 두껍게 껴입고 눈을 보며 좋아하는 걸 보니 은색 달인 것 같았다. 곧 빛을 따라가는 날이 시작되겠군. 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를 보자니 고향 생각이 났다. 누군가는 저걸 보며 소원을 빌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영감을 얻지만 엔비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매일 보면 지겨워지기 마련. 그에겐 다른 것이 더 중요했다.

 

 

 

"엄마! 엄마~! 나는 멋진 모험가가 되고 싶어! 모험가가 되서 대륙 전체를 다 돌아다니고 싶어!"

 

"정말? 그럼 집에가서 청소부터 하렴."

"아 엄마~"

 

 

 

 오로라를 구경하는 어느 모자의 대화가 들려왔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부모와 저런 식의 대화를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 기억이 남아있을 때 부터 하지마, 먹지마. 그만둬. 나가. 따위의 말만 들었다. 하지말라고 해서 말을 들을 자신이 아니지만.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가방에서 말린 나무껍질을 꺼내 씹으며 야시장을 걸었다. 축제를 위해 몰린 사람들을 노린 상인들은 물건을 흥정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흥미를 끄는 건 없었다. 축제 날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바닷가로 가야 하나. 자신을 잡는 호객꾼들을 싹 다 무시하며 길을 걷던 그의 어께에 팔을 올리는 남자가 있었다.

 

 

 

"오랜만에 본다?"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 새카맣게 탄 피부. 짧은 남색의 머리. 본 기억은 있으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머리 속에서 먹다만 썩은 사과만 떠오르는 걸 보니 한 때 같이 다녔던 사람 중 한 명 같았다.

 

 

 

"...이름 뭐더라."

 

"또 까먹었냐? 내 이름은  ██ 라니까."

 

"아, 썩은 사과."

"그거 좀 잊으라고!!"

 

 

 

 그가 소리지르던 말던 엔비는 제 갈길을 가려 했다. 이곳에서 저 남자를 만나는 건 예정에 없었던 일이고, 소란스러운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인사만 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자신의 몸이 번쩍 들려졌다. 덩치 큰 남자가 다른 덩치큰 남자를 들쳐맨 것이 흔한 광경이 아니라 주변이 웅성거렸지만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것 보단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 싫었다.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여봤지만 그럴 수록 자신을 잡고 있는 팔의 힘이 강해졌다. 그가 이렇게 나온 걸 보니 단단히 마음 먹은 것 같아 탈출을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뭐하는 거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잔 해야지~ 곧 빛을 따라가는 날이잖아? 놔주면 도망갈거 아냐. 내가 잘 아는 술집이 있다고! 가자!"

 

"힘만 무식하게 쎈 워로드 같으니라고.."

 

"뭐?"

 

"...아니. 내려줘."

 

 

 

 싫은데. 술집까지 이러고 갈건데. 라며 킥킥 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해의 마무리는 이곳에서 그와 지내야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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