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60319 - 일라이저
2021-02-24 16:44

 

 

 

Ya nadie ve este milagro

Creando la felicidad

Irresistible amor y paz

 

Nadando ahi ya no siento

 

 

 

1.

 

"레긴 새끼들. 감히 나를 무시해? 죽여버릴거야."

 

 머리 위를 덮는 거친 숨소리가 마냥 좋았다. 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채 배려 없이 제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의 물건으로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으나 남자는 이 때 만큼은 자신만을 보고 불러주었다. 그것이 좋아 이곳에 머물렀다. 그날의 일이 끝나면 남자는 자신을 치료했고 잘 참았다며 머리를 쓸었다.

 

 지식의 근간이 되는 것들은 그에게서 배웠다. 백지상태였던 나는 그가 말하는 모든 걸 흡수했다. 낡은 침대에서, 기도실에서, 창고에서……. 그는 내가 배우고 싶어서 그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목소리가 좋았을 뿐인데. 그의 성대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좋았을 뿐인데. 그의 말이 다 나를 향했으면 하는 욕심이었는데.

 

 나는 위치가 낮았다. 또래보다 뼈대가 굵고 힘이 강했지만 그건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의 서열일 뿐, 마을 전체를 보면 나는 끝자락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머무는 곳은 성당이었고, 사제장이 나를 어여쁘게 보아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이를 이용해 나는 나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폭력과 치유를 반복했다. 그에게 배운 것을 써보고 싶었기에. 단지 그 뿐이었다.

 

 

2.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너는 싫어하는구나. 너 혼자만 그렇게 생각해. 정말? 좆같다고. 너도. 이세상도. 르네도. 전부. 왜? 강한 사람은 세상에 의문을 가지지 않아. 난 약해. 나보단 강하지. 이 빌어먹을 팔이나 고쳐줘. 싫어. 그거 고치면 나 오늘 아무것도 못해. 니가 했잖아!! 응. 해보고 싶었거든. 고쳐줘. 돌아가서 밥해야해. 노래 불러줘. 그러면 고쳐줄게. 뭐? 불러줘. 노래. 네 노래 좋아. 미친 새끼...

 

발밑에 깔려있는 아이는 천천히, 가느다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

 

 얼굴 들어. 여자의 목소리는 한 점 흔들림 없었다. 펄럭이는 검은 제복,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손에 들려있는 거대한 로드. 커다란 뒷모습. 그 밑에 깔려있는 남자는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신을 따르는 종으로써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알고 있겠지."

 

 사제장이 자리를 비웠을 때 성당의 문을 두드린 여자에게 남자가 해온 일을 말한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첫 음절을 발음한 순간 나는 이미 그녀의 종 이었다.

 남자가 거대한 로드에 짖뭉게 졌을 때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뭐더라. 아아,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가야할 길이 정해졌으니.

 

 

 

4.

 여태껏 많은 소리들을 들었지만 개중에서 가장 듣기 좋은 것 중 하나는 살을 맞댈 때 나는 소리였다. 죽기 직전과 마찬가지로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므로. 눈을 감은 채 거친 숨소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쾌감, 기쁨, 슬픔, 혹은 미움. 나는 그것들이 좋았다.

 옆에서 거칠게 몸을 섞던 두 소년 중 한명이 허리짓을 멈추고 반쯤 눈을 감은 채 그들의 행위를 듣고 있던 소년에게 물었다.

 

"여어, 너도 할래? 난 셋이 하는 것도 오케이."

"필요 없어. 지금이 좋아."

"저 새끼 관음변태라니까. 나로 부족해?"

"예의상 물어본 건데 삐진 거야? 귀엽긴."

 

 방 안은 다시 소년들의 웃음소리와 주체하지 못한 혈기가 섞인 신음 소리가 뒤섞였다. 빡빡한 훈련과 공부로 인해 해소되지 않은 열정끼리 맞물려 일어나던,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5.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요, 일라이저님.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여인의 얼굴을 쓸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갔다. 등 뒤로 거대한 몬스터의 시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를 너무 흘렸나. 오른쪽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을 움직여 차갑게 식어가는 볼을 만졌다. 작은 입에서 신음 섞인 언어가 나왔다. 여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ㄹ...ㅇ...너..."

"있죠, 저는 당신의 이름을 가져갈 거예요."

 

 온 몸이 아픈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내 주인의 입술에서 나온 수많은 단어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감정의 파편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름다워. 르네여.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이 이렇게나 아름답습니다.

 몸을 조금 더 가까이 붙였다. 멀리서 보면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의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 타인의 시선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살아있어주세요. 듣고 싶어요. 웅웅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작은 숨이 코끝에 닿았다. 마지막 호흡이었다. 나는 그것을 삼켰다.

 

"잘 들리지 않아요, 일라이저님."

 

 

 

6.

 서산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기도문을 마지막으로 외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지기에게 인사를 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어콜라이트로 강등되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함께했던 로드를 쓸 수 없는 것이 불편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동쪽으로, 혹은 북쪽으로 계속 걸었다. 서쪽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것은 이제 내 것인데. 내겐 당연한 것이나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이 없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각기 다른 감정이 뒤섞인 것들을 보는 것은 제법 즐거웠다. 수많은 시작을 보았고 수많은 끝을 보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기억했다. 그럴수록 그들에게 온전히 섞일 수 없었다. 눈앞에 있으나 손을 뻗으면 저 멀리 사라지는 환상을 보는 듯 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알고 싶었다.

 

 

 

7.

 

"잠깐. 뭐라고요?"

 

 금발의 남자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일이었다. 몇 번째 반복되는 건지. 똑같은 말을 다시 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왜 저 아이를 도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 걸요."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되는 겁니까?"

 

그는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나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나 묻겠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 이 명제가 틀렸습니까? 약한 사람은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기에 강한 자에게 붙어 살아남는 약한 자들이 존재하는 것 이지요. 저 아이가 그러한 노력을 했나요? 성역 출신인 저로써는 오델씨를 이해할 수 없군요. 저 아이가 제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도왔을 테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답을 기다렸으나,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남자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작게 한숨을 쉬고 내 옆을 지나갔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8.

 

 들개가 사냥감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우리와 비슷했다. 사냥, 살인, 살육. 살아있는 생명이 다른 생명을 해하는 것. 어릴 적부터 접해온 세계는 그랬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저, 같은 하늘, 같은 땅을 밟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다른 것과 비슷한 이유겠지. 그렇게 짐작할 따름이었다.

 

 죽음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결과는 공평할지언정 과정은 공평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얻은 자는 이 세계에 과연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내 스스로 끝을 낼 것이다. 다른 자에게 나의 마지막을 주고 싶진 않았다. 나의 끝은 어떨까. 그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늘 즐거웠다.

 

 

 

9.

 

"다 되었습니다!"

 

 광장의 노점 앞에 앉은 아낙이 포장된 꽃다발을 내게 건넸다. 불꽃의 비와 시안색 번개로 인해 무너지고, 파괴된 도시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힘이겠지. 코끝에 닿는 향을 맡았다. 히아신스, 개미취, 별꽃.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본래 봉쇄령이 사라지면 떠날 생각이었으나 예정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 결과 말을 전했던 성직자가 성역에 가 보고한다고 하였으니 이제는 정말 떠날 시간이었다. 목적지는 북쪽. 여정의 끝이 보였다.

 

 받아든 꽃다발을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떠나기 전, 도시를 돌아보고 지금쯤 주인이 자리를 비운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일생의 마지막 변덕이었다.

 

 

 

10.

 

.드넓은 광야를 보았다. 이 땅 위에 나 혼자 오롯이 존재했다.

 

나는 결국,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친 바람 소리가 차게 울렸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나를 위해 우는 듯 했다.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를 따라 나도 입을 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빌어먹을.

제 몸의 일부와도 같은 로드를 손에 쥐었다. 여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멈췄다.

 

 

 

 

 

 

 

서두의 글귀는 Jin Akanishi의 Mi amor(Spanish ver.)의 가사 일부

이렇게 썼지만 진짜 오랜 시간 에버니저의 힘으로(?) 잘 먹고 잘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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