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0191215 - 아리샤 라비야 할라
2021-02-24 15:02
 수많은 사람들, 익위사들, 그리고 신관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곳. 커다란 백색의 건물에 도착한 할라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할라님.”
 약 5년 전, 첫 번째 방학 때 자신과 함께 중앙 신전으로 갔던 신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녀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2층에 있는 한 사무실이었다. 안내한 신관이 문을 열자 방 중심에 있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신관과 그와 대화를 하고 있는 다른 신관이 보였다. 할라가 가볍게 목례를 하자 사무실의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할라. 드디어 중앙 아나폴리스에서의 일이 끝났군요.”
“하이프리스트 아리샤 라비야 할라가 아멘시아 신전의 성하께 인사를 드립니다.”
“한 달 만에 보는 것 같지만, 서로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군요.”
 
 여인이 부드럽게 말하자 방 안에 있던 다른 신관들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방 문이 닫히고, 할라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려고 했다. 먼저 서두를 연 것은 상대였다.
 
“할라. 나는 너를 아크비숍으로 추천할 생각이야.”
“카린 선배, 난 현장이 더 편해요.”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집행을 맡겠다고 한 이유를 잘 알고 있잖아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할라가 다리를 꼬았다. 상관 앞에서 건방지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단 둘 뿐이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태도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제제를 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오갔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카린이 할라에게 책상 위에 있는 쿠키를 건네며 침묵을 깼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계속 반역자들을 추적할 생각은 없니?”
 
 대놓고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할라가 카린을 노려보았다. 망할, 아크비숍은 미끼였군. 저도 모르게 나올 뻔한 본심을 억눌렀다. 보고고 나발이고 더 할 말은 없었다. 775기의 졸업과 함께 할라 또한 중앙 아나폴리스에서의 업무는 끝났고, 반역자 관련 서류들 또한 모두 끝내둔 상태였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은 모두 제출해두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이미 들어둔 상태였다.
775기 졸업생들의 일부는 중앙 밖으로 떠나고, 다른 누군가는 중앙에 남았다. 중앙 신전에서는 추가적인 반역자 색출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고, 필요한 익위사들을 추리는 과정에서 예외적으로 자원하는 775기의 졸업생을 한정으로 받는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할라는 어느 곳에도 끼고 싶지 않았다. 반역자들을 처음 쫓기 시작하고, 지금의 결과를 만드는데 10년이 걸렸다. 누군가는 청춘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가장 빛나는 시기라 말하는 시간의 전부를 이곳에 바쳤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휴식을 취할 때라 생각했다.
본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던 와중 자신을 부른 것이 눈 앞의 상대였다. 처음 반역자들을 쫓기 시작했을 때 도와준 사람. 은 산령에 대해 추적 및 조사가 필요하나 중앙 아나폴리스에 들어갈 방도가 없을 때 중앙 신전에 보고해주고, 그녀를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자.
 
“네게 거부권은 없어. 이건 명령이야.”
“…나는 지쳤어요.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요.”
“중앙 신전은 지금 매우 예민해진 상태야. 밖이 아닌 안에 적이 있었으니까. 네가 체포한 것은 그저 일부일 뿐, 땅 밑에 숨은 다른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겠지.”
“나는 제공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제공했고, 반역자들을 잡아들이는데 충분히 도움을 줬어요. 내가 찾아낸 단서와 남익위사 좌익찬 예하의 힘으로 아소이약 창화의 반역자를 색출해냈고, 오랜 시간 중앙 아나폴리스에 숨어있던 반역자도 찾아냈어요. 선배, 10년동안 나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뛰어왔고 이제 조금 쉬고 싶어졌는데. 제게 이 짧은 휴식조차 허락되지 않은 건가요?”
“아이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니?”
 
카린의 갑작스러운 말에 할라는 말문이 막혔다. 속 어딘가가 턱 막힌 기분도 들었다. 하,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왔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호흡을 고르고, 상대의 저의를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려는 이성과 달리 자신의 입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그 때 아이들의 표정을 모르겠지. 누군가는 내 명령에 따라야만 했고, 누군가는 내 명령을 거부하고, 또 누군가는 방조했어. 나의 행동이, 내 신념과 신앙이 19명의 인생에 흉을 남겼어. 흉의 크기가 크던 작은 생채기인가는 중요하지 않아. 정당성의 여부를 떠나 그 순간 나는 가해자가 되었어.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를 내가 망쳤다고.”
“네 임무를 망각했어. 처음부터 정을 주지 말았어야지.”
“알아. 안다고…”
“넌 악역이 되기엔 너무 물러.”
 
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할라 앞으로 가 그녀를 내려보았다. 분노, 슬픔, 죄책감 등이 뒤섞인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후배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멘시아의 아크비숍 시옌 카린이 아멘시아 신전 소속 하이프리스트 아리샤 라비야 할라에게 다음 명령을 내리겠다.”
“선배, 제발…”
“중앙 신전의 세인트, 하이프리스트들과 협력하여 앞으로 5년간 반역자를 색출하도록.”
 
하. 조금 전과는 다른 웃음이 나왔다. 그래. 선배는 항상 이랬지.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정처 없이 뒤섞이던 감정들이 조금씩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감정과 다르게 이성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할라는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 정말 즐거워서 웃는 것인지 너무 슬퍼서 웃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대로 할라는 고개를 숙였다.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나빴다. 선배는 정말 나빠요.”
“알아.”
“딱 5년. 미친듯이 일해줄게. 그 이상은 안 해.”
“알아. 또 필요한 건 없니?”
“그 후엔 집과 가까운 신전으로 옮기고 싶어. 내 본가와 가까운 쪽으로.”
“어렵지 않지. 그 때 쯤의 네 공적이라면.”
 
할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을 가렸던 손을 떼어내며 여전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카린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기분은 기묘했다.
 
“…하나 더. 익위사와 동행할 때는 릉 이상의 익위사로 배정해줘. 그리고, ”
“775기가 너를 찾지 못하게 해달라고?”
“…아니. 일하면서 동선만 겹치지 않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를 찾으러 오는 것까지 막을 순 없으니까.”
“장담은 못해.”
“그거면 충분해.”
 
 할라가 카린을 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은 산령, 아슬파윤을 체포하던 날 지었던 미소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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